이런저런 생각들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CreatoMaestro 2025. 5. 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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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

패배자, 가난, 고통, 두려움, 슬픔, 무기력함.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실패는 실제로도 너무 고통스럽다.

목표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는 상처를 입고 큰 슬픔과 자기 의심에 빠져든다.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걸까? 

괜히 안되는 거 사서 고생하는 거 아니야?

남들은 다 하는 건데 왜 나는 안되지?

실패의 충격이 너무 크면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만다.

 

실패가 왜 두려울까

 

고등학교 때 나는 나름 이름있는 자사고를 다녔다.

대부분의 자사고가 그렇듯 이런 곳은 전국단위로 천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어렸을 때 부터 교육을 잘 받고 온 천재들은 습득속도가 남다르다.

내가 겨우겨우 따라갈 때 그들은 이미 저 멀리서 심화과정을 거치는 엄청난 친구들이였다.

당연히 나는 벽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대학교가 인생의 전부였던 고등학교 시절,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바닥이었던 영어과목을 1대1로 지도받았고,

야자 시간을 늘려서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일찍 나와 아침 6시, 7시부터 공부했다.

머리가 나쁜 만큼 양으로 승부를 봐야 겠다는 생각이였다.

 

스트레스에 피부는 여드름으로 박살나고,

운동을 안하니, 근육은 빠지고 뱃살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삶에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나와 공부하는 공부기계가 되었다.

그정도로 했으니 성적이 좀 올랐을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2 1학기 기말고사, 내 성적은 더 떨어졌다.

뭐가 잘못된걸까. 한참 고민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지쳐서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드렸다.

그렇게 선생님 얼굴을 보는데,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폭팔하더라.

남들 앞에서 운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엿다.

 

담임선생님은 위로를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셨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공부를 해야 했고 슬픔을 추스를 시간은 없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실패로 슬프고 힘들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 상황은 보란듯이 당당하게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패배자라 생각하고 무기력함을 느낀다.

 

여기서는 성적이 오르지 않았지만, 사실 더 크고 심각한 패배가 넘처난다.

입사에 실패했을 때, 고백에 실패했을 때, 투자에 실패했을 때 등등..

사람에 따라 크게 다가오는 실패가 다르겠지만, 

실패의 슬픔은 모두가 똑같이 느낀다.

실패의 벽
실패한 상황은 언제나 벽처럼 서 있다. 우리가 뭘 느끼든 그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사실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인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실패로 인해 슬픔이나 무기력함을 느낀다면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감정을 소화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면 힘들다고 그 감정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채 쌓이면, 그 감정은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뿜게 된다.

우리가 그걸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뒤에서 영향을 준다.

그 영향은 삶 전반에 미치며,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제약을 줄 것이다.

지금 좀 힘들더라도 나 자신이 그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놓아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어떻게 해라 말하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사람에 따라 효과적인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같이 독립적이고 혼자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 혼자 가만히 쉬는 것을 좋아한다.

게임을 하든, 책을 읽든 혼자 있다보면 그 실패를 보듬을 여유가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이걸 털어놓을 때 회복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명상할 때 회복이 일어나며,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할 때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난다.

익숙한 곳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때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휴식 그림
너무 힘들면 좀 쉬자

 

실패로부터 배우기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정말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노하우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내 집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다.

그 버스 정류장은 역과도 가깝고, 서울로 가는 버스들이 모이는 곳이라

출근 시간대나 금,토,일에는 항상 붐빈다.

 

어느 날 내가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그 때가 토요일 점심 쯤이였다.

대충 1시간 걸린다고 하길래 약속시간 1시간 전에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근데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사람만 많은 거였으면 좀 기다리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이전 정류장들에서 이미 버스가 다 찼기 때문에, 이 정류장에서는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1시간을 지각하고 말았다.

 

그 이후, 한번 더 강남에 갈 일이 있어 버스를 타야했다.

이번엔 좀 달랐다.

저번에 버스를 못탔던 실패를 경험했던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버스를 못탈테니 다른 방식을 생각해야 했다.

다행이도 20분만 걸어가면 버스가 출발하는 지점이 나왔다. (첫 정류장)

20분을 걸어가야 하지만 1시간 동안 버스를 못 타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출발지에서 버스를 타니 정말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집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는데,

꽉 찬 버스는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캬... 그 당시 쾌감은 잊히지 않는다.

 

이런 일상적인 실패로도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면, 이를 이용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배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잘만 활용하면 실패는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이렇게 실패 예찬론을 펼쳤지만 실패는 정말 고통스럽다.

용기를 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실패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못한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잊은 것 뿐이다.

실패는 힘들다.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힘들다.

실패가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실패가 힘들면 힘들수록, 크면 클수록,

이를 극복하고 교훈을 얻었을 때 가지는 열매도 그만큼 달다.

어쩌면 실패가 계속해서 찾아올 수도 있다.

실패하고 또 일어나고, 실패하고 또 일어나고.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피어오르게 된다.

 

위인전 같은 책은 끊임없이 노력해서 결국 얻어내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했기에 위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위인으로 칭송받으며 책까지 나올까?

그만큼 그게 어렵기 때문이다.

 

모두가 실패를 겪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은 절망을 느낀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주고 싶다.

내 고등학교 생활은 어떻게 끝났을까?

수능 직전인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나는 성적향상 장학금을 받았다.

그 괴물들 사이에서 내신 성적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엄청 좋은 곳은 아니지만 나름 이름있는 인서울 대학교에 갔다.

중간에 수능이 망하고, 수시도 최초합격이 없어서 또 실패일 줄 알았지만

1차 추가합격으로 들어갔다.

 

실패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실패에 넘어지더라도, 여러분이 그대로 엎어져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자.

맞다. 힘들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한 번만 더 걸어보자.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장학금을 받았을 줄 당시에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 조차도.

 

누가 알겠는가, 그 벽 사이에 좋은 일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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