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전술

우리 마음을 비판하는데 특화된 내면의 비판자

CreatoMaestro 2024. 2. 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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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최고 부정왕, 내면의 비판자

당신은 지금 굉장히 중요허지만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을 해내야 한다.
그 일은 면접이 될 수도 있고 시험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그 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실을 맺고자 한다.
그때 당신의 내면에서 이런 말이 속삭인다.
‘미안한데 넌 그걸 해낼 수 없어. 넌 실패하고 말 거야. 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겠지’
당신은 마음속의 그 말을 듣고 불안감에 휩싸인다.
정말 내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오는 거 아니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당신은 실제 겪기 전까지 이런 마음을 계속해서 가지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만한 이야기다.
누구나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떨리는 것은 똑같다.
또한 누구나 마음속에서 들리는 부정적 목소리가 있다.
이 부정적 목소리는 내면의 비판자가 내는 소리이다.

내면의 비판자는 우리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존재이다.
내면의 비판자는 특히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할 때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낸다.
넌 안돼. 넌 못할 거야. 네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넌 결국 실패하고 말 운명이야.
내면의 비판자는 우리의 내면에서 하고자 하는 일마다 초를 친다.

내면의 비판자는 왜 자꾸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사실 내면의 비판자는 엄청난 겁쟁이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이미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예하며, 우리가 그 밖으로 나가지 않게 부정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런 내면의 비판자는 우리가 과도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면의 비판자는 정도라는 것이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도 내면의 비판자는 안된다고 소리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면의 비판자를 그냥 내버려두면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다.
문제는 내면의 비판자의 목소리와 불안감이 콜라보를 이룰 때 발생된다.

내면의 비판자와 불안감, 그 환상의 콜라보

내면의 비판자가 하는 말은 우리의 불안을 자극한다.
불안감은 우리의 행동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고,
행동에 확신이 없어 본 실력을 내지 못하게 만든다.
내면의 비판자는 불을 지피는 라이터고,
불안감은 그 불이 활활 타오르게 도와주는 장작이다.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우리의 행동을 막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내면의 비판자는 적당히가 없기 때문에 장작에 불을 자주 붙인다.
우리가 화재를 진압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여기저기 불이 붙어, 우리의 내면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화재를 진압해야 할까?

내면의 비판자와 전투를 벌이기

내면의 비판자는 불안감에 불을 지피고,
우리는 그 불을 꺼야 한다.
하나 희망적인 것은 공격이 수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가 적절히 대응을 한다면 내면의 비판자는 힘을 쓰지 못한다.

화재는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감에 붙은 불도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불안감에 불이 지펴지자마자 이를 감지하는 훌륭한 센서가 있다.
우리는 불안감이 조금만 생겨도 이를 금방 감지한다.
그래야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내면의 비판자가 우리의 불안감을 자극하면, 우리는 이를 논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물론 불안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고 싶은 유혹이 들 것이다.
그러나 불을 내버려두면 더 큰 화재로 변하는 것처럼 줄안감도 초기에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지 않으면 더 크게 돌아온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논리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면의 비판자는 우리가 조금만 건드려도 불안감을 느끼는 존재인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내면의 비판자는 그리 똑똑하지 못하다.
그래서 정말 일반적이거나 막연한 말만을 한다.
앞서 예시를 들었던 것처럼 ‘넌 실패할 거야.‘ 라든가
‘넌 나중에 빈털터리가 될 거야.’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같은 과장된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에는 논리가 없다.
우리가 왜 실패할거야? 라고 물어보면 내면의 비판자는 ‘넌 못났으니까’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럼 또 물어보자. ‘어디가 어떻게 못났지?‘
그럼 또 뭐라 뭐라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어가다 보면 그 의견에는 논리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껄껄 거리며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논리가 있으면 어떡할까?
간단하다. 문제가 뭔지 알았으니 그걸 고치면 된다.

논리로 파고 들어가면 내면의 비판자는 우리의 감정적 약점을 콕콕 건드는 것에 불과하단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논리로 박살내면 그만이다.

만약 이것이 힘들 정도로 그 목소리가 강하다면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다.
그래도 결국에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과거 필자는 스스로가 못났다는 내면의 비판자에 굴복했었다.
그 목소리는 내면의 그 무엇보다도 강했다.
‘넌 못생겼고, 넌 결국 누구도 이기지 못해.’
’ 누가 봐도 남자답지 못하네. 운동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맨날 당하고 살잖아?‘
’ 넌 평생 그렇게 패배자로 살 거야. 여자친구도 못 사귀고. 돈도 못 벌겠지.‘

그 말들은 내게 상처를 입히고 항상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그것을 이겨낼 샹각조차 못하고, 학창 시절 아웃사이더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군대에서 한 번 터졌던 적이 있는데,
군대 가기 직전에 사람들이 다 떠나고 힘든 상태에서 맞선임이 어마어마하게 갈군 뒤였다.
자살 생각을 할 정도로 외롭고 힘들었을 때, 비로소 내가 바닥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의 밑바닥. 그곳이 내 자리였다.
그때 처음으로 내면의 비판자에게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때는 그게 내면의 비판자인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그냥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그때 이후로 심리와 트라우마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운동도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내면의 비판자와 싸우면서 지금은 내면의 힘이 그때보다는 훨씬 강해졌다.
물론 아직 극복하고 있는 문제도 있지만, 사람들과 잘 지냐고 일에서도 성과를 낼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

그러니 내면의 비판자가 괴롭히고 있다면 그와 전투를 벌여라.
내면의 비판자는 충분히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이다.
더 이상 내면의 비판자가 당신의 삶을 망치게 두지 않길 바란다.
용기를 내고, 깨질 각오를 하고 덤비지.
당신은 이미 그 용기와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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